평균 100타가 넘는 박과장. 몇 개 홀 동안 버디 하나를 곁들인 연속 파를 잡아 동반자들을 놀라게 했다.
“컨디션이 좋았다”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스포츠 심리에 대해 미국에서 공부한 신경정신과 이택중 박사는 “이른바 야구공이 수박만하게 커 보이고, 아무리 먼 퍼트라도 반드시 들어갈 것 같은 확신이 생기며 실제 들어가는, 그 무엇이든 가능한 독특하고 꿈 같은 무아지경 몰입의 시기가 존재하며 이를 ‘ZONE’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2008년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에서 타이거 우즈가 8m 우승 퍼트를 성공시킨 후 기쁨에 모자를 집어 던지며 어퍼컷 세리모니를 했는데 잠시 후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에게 ‘내 모자가 왜 저기에 있느냐’고 물었다”면서 “이처럼 목표에 집중해 다른 것은 기억도 할 수도 없는 시기가 ZONE 속에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런 몰입지대 속에 있는 기간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평생 타율이 2할6푼인, 수비력 때문에 경기에 나가는 그저 그런 야구 선수가 특정 시즌, 4할에 육박하는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무명 선수가 플레이오프 단기 시리즈 몇 경기에 불꽃을 피우는 일이 나온다.
ZONE이라는 개념은 미국 심리학자 미할리 칙센트미할리가 구체화시켰다. 그는 예술가들이 작업 중에 주위 소음 등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을 발견해 냈다. 그리고 생산성과 창의력이 극도로 높은 이 몰입의 기간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려 시도했다.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 등 위대한 선수들은 이 ZONE에 더 자주 들어가고, 한 번 들어가면 더 오래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다른 선수들도 그들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골프 심리학자인 토마스 페레로는 이 몰입경에 들어가기 위한 기반은 자신감이라고 했다. 긴장이 없고 다음 샷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몇 개의 굿샷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을 때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감은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금방 사라질 수 있다.
3만 번 연속 타깃을 맞춘 사람이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인가? 아니다.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숟가락에 밥을 얹어 수만 번 연속 입에 명중시켰다. 손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분석하지는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면 숟가락은 타깃 정 가운데에 들어가게 된다.
“모든 스윙은 완벽하다.”
비제이 싱, 크리스티 커 등을 가르쳤으며 선(禪)을 공부한 심리학자 조셉 패런트는 『젠(禪)골프』와 『멘탈 골프의 예술』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물론 대부분 골퍼의 스윙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완벽한 스윙은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스윙이다. 연습을 통해 나아지겠지만, 지금 당장 이 순간에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스윙이 당신에게 완벽한 스윙인 동시에 유일한 스윙”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냥 자신감을 가지고 생각 없이 스윙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자신감은 여러 종류가 있다. 실력을 과장되게 평가하는 건 위장된 자신감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허풍을 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실제보다 멋진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어 하겠지만, 진실은 금방 드러나고 파국에 이를 뿐이다. 이 자신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한계를 인정해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낸다.
조건부 자신감도 있다. 샷이 잘되면 자신감을 가지지만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 머리를 지배한다. 자신감은 욕심을 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욕심은 화를 부르고, 화는 근육을 경직되게 만들어 샷의 실패를 가져온다. 미스샷은 실망을 안겨주고, 자신에 대한 회의로 연결된다. 그러면 불안감이 생겨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이런 악순환의 시작이 욕심이다.
골퍼들이 가져야 할 건 절대적 자신감이다. 인간이 본래 완전한 존재였다고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고, 실력도 좋다는 믿음이다. 수만 번 입 속에 숟가락을 명중시키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모든 샷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떤 결과든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샷 하나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넓은 안목으로 사태를 파악한다. 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절대적 자신감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서나 두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 진정한 자신감의 발로다.
라운드마다 자신만의 기준타수를 정하면 좋다. 날씨, 컨디션, 코스 난도에 따라서 기준타수를 달리하면 마음의 평정을 찾기 좋다. 결정은 단호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두 가지 정신이 경쟁을 벌인다. 하나는 계획을 세우는 의식이고, 하나는 몸 움직임을 조정하는 무의식이다.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몸은 정신으로부터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받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대충샷도 금물이다. 어드레스 후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캐디에게 미안하거나 귀찮아서 클럽을 바꾸지 않고 치거나, 완전한 준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퍼트하는 경우가 많다.
몸과 마음은 한 곳에 있어야 한다. 몸은 퍼팅 그린에 있지만, 정신은 “뒤 그룹이 나를 쳐다보지 않을까” 하고 페어웨이에 있지는 않은가. 다음 홀에 대한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과가 나쁘면 자신을 저주하는 골퍼도 많다. 학대받으면서 골프를 칠 이유가 있는가. 자신을 욕하는 것은 고약한 캐디를 데리고 다니는 것과 같다. 그 캐디를 해고하라고 조셉 패런트는 충고한다. 대신 절친한 친구가 샷을 실수했다고 상상하면서 “괜찮아 친구야,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야”라고 자신에게 얘기한다.
ZONE에 머물기 위해서는 집중력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집중력과는 다른 개념이다. 최경주는 “어떤 선수들은 카메라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위 갤러리는 물론, 멀리서 지나가는 마차까지 세우고 때론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잡념을 이길 수 있는, 주위 환경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몰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음과 자연,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게 하라는 선(禪)철학의 잠언과 비슷한 얘기다. 퍼팅에 매우 뛰어났던 벤 크렌쇼는 “퍼팅이 잘 되는 날엔 그린과 몸이 일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홀 컵 속 흙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고 했다. “집중력은 목적에 모든 것이 포커스되어 있고 긍적적이며 마음과 몸이 하모니를 이루는 우주가 되는 것”이라고 페레로는 설명한다. 몸으로 느끼는 것은 좋지만 언어는 마음과 몸의 본능을 구체화시키게 되면서 방해 요소가 된다고 한다. 조셉 페런트는 “‘원숭이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원숭이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원숭이’는 인식할 수 있는 것이고 ‘하지 마’는 그냥 개념이기 때문이다”고 책에 썼다.
Text 성호준(골프전문기자)